예전 이동원 목사님께서 은퇴하시며 발표한 5가지 참회에 대한 이야기.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기억하시나요? 첫번째 내용. “하나, 조국의 민주화 운동이 한창일 때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하고 방관자로 살아온 일과, 지도하던 청년들에게도 행동을 촉구하지 못한 일”
더불어 전 은퇴하는 그 날, 같은 내용을 반복하고 싶지 않다고도 말씀드렸습니다. 한번은 통하지만, 두 번은 통하지 않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6월항쟁에 대한 좋은 기사가 있어 링크합니다. 꼭 정독하길 바랍니다. 6월 항쟁에 대한 자신의 입장과 견해는 다양할 수 있고 또 그게 당연한 일입니다. 허나, 6월 항쟁 자체를 모르고 사는 일은 6.25가 뭐냐고 물어보는 청소년들과 크게 다르지 않겠지요.
http://media.daum.net/society/view.html?cateid=1067&newsid=20110610082715322&p=nocut
저와 여러분의 관.심.사.는 무엇일까요? 개인사를 돌보는 일,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못지않게 중요한 일도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한나를 묵상하고 있지요? 한나는 그 당시 부당한 관습의 적나라한 피해자였습니다. 자녀가 없다? 아들이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존재 자체를 인정받지 못한 채, 브닌나의 경멸속에 살아야 했던 불쌍한 여인이었습니다.
그 여인이 뒤늦게 얻은 아들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리며 드린 한나의 기도(삼상2:1-10)를 꼭 기억해야 합니다. 기도내용을 몰랐으면 몰라도 알고 난 뒤에도 마치 모르는듯 살아서는 곤란합니다. 사무엘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역전시키려 했나요? 브닌나에 대한 복수의 통로로 삼았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무엘을 떠나보내며 선한 하나님의 통치자가 세워지길 간구했습니다. 아들을 통해 뒤틀려진 사회가 바로잡히길 기도했습니다. 사랑과 정의의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길 기도했습니다. 그 절절한 소망을 삼상2:8-10에 담았지요. 바로 사회적 모성애를 지닌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올곧은 아들과 올곧은 사회를 동시에 꿈꾸는 사회적 모성애를 지닌 아름다운 어머니의 형상입니다. 우리 교회 지체들에게도 한나와 같은 사회적 모성애를 보여주는 이들이 많아지길 기대합니다.